2026년 10월 28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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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최경집 교수의 시선] 김장은 11월에 하지만, 절임배추 예약은 10월이면 이미 한창이다

손님의 달력과 가게의 달력 사이, 그 시차를 메우는 주문 타이밍

  • 최경집
  • 입력 2026.10.26 13:18
최경집 교수의 시선

김장 장사는 김장하는 날이 아니라 주문서를 넣는 날에 갈린다.

이런 장면을 떠올려 보자. 김장철이면 어느 동네 가게에서든 한 번쯤 나올 법한 장면이다. 단골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묻는다. "사장님, 절임배추 이번 주에 되죠?" 사장님은 잠깐 말을 고른다. "아, 그게… 이미 마감됐어요." 손님도 웃고 사장님도 웃는다. 둘 다 조금 어색하게. 손님은 고춧가루 한 봉지만 들고 나가고, 사장님 표정은 한동안 그대로다.

아쉬운 것은 배추 몇 상자를 못 판 일이 아니다. 그 단골이 올해 김장을 다른 가게에서 준비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김장은 습관에 가깝다. 배추는 어디서, 고춧가루는 어디서 사는지 집집마다 정해 둔 곳이 있고, 한 번 옮겨 간 손님은 이듬해에도 그쪽으로 가기 쉽다.

사장님에게도 할 말은 있다. 산지 마감이 그렇게 빠를 줄 몰랐고, 손님이 그렇게 늦게 올 줄도 몰랐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그 사이에서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을 뿐이다.

손님의 달력과 가게의 달력

김장은 11월에 하지만, 절임배추 예약은 10월이면 이미 한창이다. 손님 머릿속 달력과 가게 달력은 서로 다른 속도로 넘어간다. 손님은 "다음 달쯤 김장해야지" 하고 있지만, 절임배추 예약은 그보다 먼저 움직인다. 손님은 이 사정을 모르고, 굳이 알 이유도 없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소비자패널 1,000명을 조사한 결과, 11월 중순에서 12월 상순 사이에 김치를 담그겠다는 비율이 73.1%였다. 그런데 올해 롯데마트·롯데슈퍼는 10월 1일부터 1차 절임배추 사전예약을 받았고, 이마트는 10월 15일부터 28일까지 예약을 받는다. 손님의 김장은 11월 중순 이후에 몰려도 큰 유통업체의 예약은 이미 10월에 움직이니, 동네 가게의 달력도 거기에 맞춰 두는 게 좋다.

주문 타이밍은 결국 아직 들어오지 않은 물건의 문제다. 넘치는 재고는 냉동고 문을 열 때마다 눈에 보이기라도 한다. 들어오지 않은 물건은 손님이 찾는 순간에야 빈자리로 드러난다. 그 시차를 메우는 일이 가게의 몫이다.

예약 마감일을 달력에 먼저 적는다

절임배추, 고춧가루, 젓갈은 거래처마다 마감일이 다르다. 머릿속에만 담아 두면 꼭 하나는 놓친다. '알고 있었는데 깜빡했다'는 말은 업종을 가리지 않는 단골 핑계다. 그래서 벽 달력에 빨간 펜으로 적어 두는 게 좋다.

그리고 그 날짜를 손님에게도 보여 주면 된다. 계산대 앞에 "절임배추 예약 ○월 ○일까지"라고 적은 종이 한 장이면 충분하다. 마감일은 숨기는 것이 아니라 알리는 것이다. 마감 일주일쯤 전부터는 문구를 "예약 마감 ○일 남았습니다"로 바꿔 다는 것도 방법이다. 사람은 날짜는 흘려 보아도 줄어드는 숫자에는 눈이 걸린다.

김장 시기는 지역마다, 동네마다 다르다. 남의 동네 기준을 따를 필요는 없다. 우리 가게 손님들이 보통 언제 김장을 하는지 작년을 떠올려 보고, 거기서 거꾸로 세어 마감일을 잡으면 된다.

거래처에도 미리 물어 두는 게 좋다. 올해 마감은 언제인지, 물량이 빠듯해질 기미는 없는지. 납품하는 쪽에 서 보면 먼저 묻는 거래처가 반갑다. 마감 직전에 몰리는 전화 열 통보다 한 주 먼저 걸려 온 전화 한 통이 서로의 일을 훨씬 수월하게 만든다.

"올해 김장 언제 하세요?"

이 한마디면 충분하다. 계산하면서 가볍게 묻는다. 손님이 "다음 달 셋째 주쯤?" 하고 답하면 공책에 적어 둔다. 이름과 날짜, 대략 몇 포기인지. 그게 곧 예약 명단이 된다. 거창한 프로그램은 필요 없다. 계산대 서랍에 들어가는 공책 한 권이면 된다.

이 질문의 장점은 파는 말처럼 들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안부에 가깝다. "예약하세요"는 광고지만, "언제 하세요?"는 대화다. 손님은 광고는 지나쳐도 대화에는 답한다. 그리고 답하는 순간 마음이 반쯤 정해진다.

마감 며칠 전에는 적어 둔 손님에게만 한 번 더 말을 건네면 된다. "작년처럼 하실 거죠?" 단골은 자기를 기억해 주는 가게를 좋아한다. "올해는 안 해요" 하는 손님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적어 둔다. 내년에 다시 물어볼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공책 한 권은 가게 안쪽 사정에도 쓸모가 있다. 명단이 쌓이면 거래처에 넣을 물량을 감이 아니라 근거로 잡을 수 있다. 덜 시켜서 손님을 놓치는 일도, 더 시켜서 냉동고에 숙제를 쌓는 일도 그만큼 줄어든다.

김장하는 날을 한 줄로 묶는다

김장하는 날을 떠올려 보자. 배추와 양념만 있으면 끝일까. 그렇지 않다. 저녁에는 수육을 삶고, 보쌈에 곁들일 소스도 필요하다. 김장 비닐과 고무장갑은 이상하게도 꼭 그날 떨어져 있다. 손님은 이것들을 따로따로 기억하다가 하나씩 빠뜨린다.

그러니 진열대 한 줄을 '김장하는 날'로 꾸며 두는 게 좋다. 수육용 고기, 보쌈 소스, 비닐, 장갑을 가게 사정에 맞게 나란히 두는 것이다. 새 상품을 들일 필요는 없다. 이미 있는 물건을 옆에 놓기만 하면 된다. 반찬가게라면 김장 날 저녁상에 올릴 국이나 반찬 한두 가지를 곁들여 보는 것도 방법이다. 하루 종일 배추와 씨름한 집에서는 밥상 하나 덜어 주는 가게가 오래 기억된다.

계산할 때 "장갑은 있으세요?" 한마디를 붙이면 더 좋다. 손님은 "아, 장갑" 하며 하나를 집어 든다. 사장님이 손님 대신 기억해 준 셈이다.

김장은 1년에 한 번이다. 그래서 손님도 잘 잊는다. 날짜도, 준비물도, 작년에 어디서 샀는지도. 잊는 손님을 탓할 일은 아니다. 대신 기억해 주는 가게가 이듬해에도 다시 선택받는다.

먼저 묻고, 먼저 적고, 먼저 챙기는 가게가 김장철 단골을 지킨다.

달력을 한 장 넘겨 보자. 10월이 일주일도 안 남았다.

올해 11월에는 "마감됐어요" 대신 "예약해 두셨죠?"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최경집 info@newstheh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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